이세돌 대 알파고: 그 대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

Lee Sedol concentrating at the Go board during a professional match
Lee Sedol concentrating at the Go board during a professional match

수십 년 동안 바둑은 기계가 끝내 인간을 넘어선 여느 게임과는 다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깊이와 직관, 그리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계산에 좀처럼 무릎 꿇지 않는 성질 덕분에 바둑은 유독 인간적인 게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2015년, DeepMind가 알파고를 내놓으면서였습니다. 단순히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몇 달 만에 알파고는 프로기사를 꺾었고, 2016년 3월에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최강자 이세돌과 마주 앉았습니다. 바둑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바꿔 놓은 대국이었습니다.

이 글은 그 이야기를 바둑 두는 사람의 눈으로 다시 따라갑니다. 코드나 알고리즘이 아니라 장면과 선택, 그리고 그 결과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 글은 Go Magic YouTube 채널의 영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단순한 대국을 넘어: 알파고가 이야기가 된 이유

언뜻 보면 알파고 대국은 익숙한 이야기의 또 한 장면처럼 보입니다. 결국 컴퓨터가 또 하나의 게임에서 인간을 이겼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이 각본대로 흘러간 일은 이미 여러 번 있었습니다. 체커가 1990년대에 무너졌고 체스가 곧 뒤를 이었습니다. 알파고가 등장할 무렵 많은 사람은 바둑이 그저 다음 차례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바둑은 수십 년 동안 그 운명을 버텨 냈고, 마침내 그날이 왔을 때도 왕좌가 형식적으로 넘어가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알파고 대국이 하나의 이야기가 된 것은 기계가 이겼기 때문이 아니라 어떻게 이겼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드러났는가 하는 점 때문입니다.

바둑 두는 사람에게 이 사건의 의미는 최종 스코어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직관이 시험대에 올랐고, ‘좋은 모양’과 ‘정수’를 둘러싼 오랜 관념이 소리 없이 무너졌으며, 창의성이 더는 인간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이 대국은 거의 영원하다고 여겨지던 습관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알파고 이야기는 변화도와 수순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의심에서 시작해 불신을 지나 조금씩 인정으로, 마침내 수용으로 이어지는 서사였습니다. 사람들이 신경망과 학습 파이프라인을 입에 올리기 훨씬 전부터, 바둑 두는 사람은 반상에서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바뀌었음을 이미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알파고의 정체, 그리고 기적을 기대한 사람이 드물었던 이유

알파고를 만든 곳은 Google 산하의 연구 기업 DeepMind입니다. 그러나 초기만 해도 그 간판만으로 프로기사가 겁을 먹지는 않았습니다. 프로그램은 몇 년째 꾸준히 강해지고 있었지만 최정상 인간과의 격차는 여전히 컸고, 경험에 비추어 보면 알파고도 같은 곡선을 그릴 듯했습니다.

큰 틀에서 보면 이 시스템의 구조는 기술을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만합니다. 출발점은 사람이 둔 기보를 모은 거대한 데이터베이스였습니다. 엄격한 지침이 아니라 학습 재료로 쓰인 자료였습니다. 여러 신경망이 함께 움직였습니다. 그중 하나는 국면을 훑어 되풀이되는 패턴을 알아보고 다음에 나올 법한 수를 예측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 예측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 근거 있는 짐작에 가까웠습니다. 쓸모 있을 만큼은 정확했지만 결코 틀리지 않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그 옆에서 또 다른 신경망은 이미 끝난 대국으로 학습했습니다. 어떤 국면을 보여 주고 그 국면에서 결국 누가 이겼는지를 알려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신경망은 주어진 국면에서 어느 쪽이 앞서는지를 가늠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이 판단 역시 정밀하지는 않았습니다. 초기 정확도는 대단치 않아서, 확신보다는 60%에 가까울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완벽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다음 단계를 이끌어 줄 만큼만 괜찮으면 됐습니다.

Computer screen displaying AlphaGo analysis with Go board positions and win rate graphs

그다음 단계가 바로 자가 대국이었습니다.

이 거친 예측 도구를 손에 쥔 알파고는 자기 자신을 상대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대국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한 판마다 새로운 데이터가 쌓였습니다. 승패는 다시 시스템으로 돌아가, 어떤 선택이 성공으로 이어지고 어떤 선택이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감각을 다듬었습니다. 패턴은 일반화되고 가정은 조정되며 이 순환 전체가 몇 번이고 되풀이됐습니다. 강화 학습이라 부르는 이 과정에서 알파고의 진짜 힘이 천천히, 조용히 자라났습니다. 고정된 데이터베이스가 결코 줄 수 없는 힘이었습니다.

여기까지의 설명이 얼마나 대략적인지는 짚어 둘 필요가 있습니다. 만든 사람도 인정하듯 이 설명은 수많은 기술적 세부를 건너뜁니다. 수학에 빠지지 않고 아이디어의 윤곽만 그리기 위한, 의도적인 단순화입니다. 이 분야를 더 깊이 아는 사람이라면 설명의 빈틈과 지름길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것이고, 그런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다만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시점의 알파고가 어떻게 보였는가입니다. 훗날 사람들이 떠올리게 될 차갑고 무자비한 엔진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그 바둑은 오히려 사람의 바둑처럼 보일 때가 많았습니다. 정해진 포석을 따랐고, 보수적인 선택을 했으며, 요즘 AI 도구라면 곧바로 짚어 낼 기회를 놓치기도 했습니다. 만든 사람조차 완성된 무기가 아니라 아직 만들어 가는 중인 물건이라고 말했습니다.

기대가 크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바둑 두는 사람은 전에도 유망하다는 프로그램을 여럿 만나 봤고, 그때마다 비교적 손쉽게 무너뜨렸습니다. 적어도 서류상으로 알파고는 또 한 번의 점진적 개선처럼 보였습니다. 인상적일지는 몰라도 혁명은 아니었습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이 판단이 얼마나 빗나갔는지를 똑똑히 보여 주었습니다.

판후이와의 대국: 인간의 자신감에 생긴 첫 균열

세계의 시선이 서울로 쏠리기 전에, 알파고는 이미 프로기사와 마주 앉은 적이 있었습니다. 2015년 10월 DeepMind는 조용하다 못해 눈에 띄지 않는 대국을 마련했습니다. 상대는 중국에서 태어나 프랑스에 사는 프로기사이자 유럽 선수권 3회 우승자인 판후이였습니다.

Fan Hui playing Go against multiple opponents during a public event

서류상 판후이는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분명히 강했고 경험도 많았으며 어엿한 프로였지만, 동아시아 최정상급에게만 따라붙는 신화 같은 후광까지는 없었습니다. 제안을 받았을 때 회의가 드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프로그램이 프로에게 도전한 적은 전에도 있었고, 결과가 놀라운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판후이는 대국을 받아들였습니다. 만만치는 않아도 감당할 만한 승부가 되리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 예상은 금세 무너졌습니다.

한 판, 또 한 판 알파고가 이겼습니다. 아슬아슬하게도, 실수 하나를 파고들어서도 아니었습니다. 내용까지 확실한 승리였습니다. 최종 결과는 기계의 5–0. 프로기사가 호선 대국에서 AI를 상대로 한 판도 따내지 못한 첫 사례였습니다.

그런데도 충격파는 이상하리만치 잔잔했습니다.

바둑계에서 이 결과는 공포가 아니라 수군거림을 낳았습니다. 판후이의 실제 기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고, 주로 유럽에서 살며 두다 보니 아시아 프로에 비해 날이 무뎌졌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동정도 있었습니다. 기계에 다섯 판을 내리 지는 일은 어떤 기사에게든 견디기 힘든 심리적 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많은 기사가 이 대국을 결정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알파고가 이긴 것은 맞지만 의미 있는 승리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 최강자 앞에서라면 이 기계도 결국 흔들릴 것이라는 믿음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이 순간은 폭풍 전야였습니다. 경고 신호가 분명히 보였는데도 편하게 지나쳐 버린 지점이었습니다.

인간을 닮은 기계: 초기 알파고의 한계와 실수

알파고가 판후이를 이기고도 경보가 울리지 않은 데는 그 바둑의 성격도 한몫했습니다. 이 초기 버전은 훗날 AI 바둑 하면 떠오르는 집요하고 비인간적인 힘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포석은 낯익었습니다. 익히 아는 정석이 반상에 등장했습니다. 수십 년째 표준으로 통하던 지키는 모양도 망설임 없이 나왔습니다. 몇몇 국면에서 알파고는 요즘 AI 도구라면 비능률적이거나 불필요하다고 볼 단단하고 보수적인 벌림을 골랐습니다. 경험 많은 관전자에게 이 바둑의 상당 부분은 편안할 만큼 익숙했습니다.

Overhead view of a Go board during a match between AlphaGo and Lee Sedol

더 눈에 띄는 것은 알파고가 실수를 했다는 점입니다.

훨씬 강한 분석 엔진을 쓸 수 있는 지금 눈으로 보면, 그때의 선택 가운데 몇몇은 분명 최선이 아닙니다. 놓친 교환이 있었고, 그냥 지나친 급한곳이 있었으며, 더 날카로운 수로 판세를 확실히 기울일 수 있었던 장면도 있었습니다. 어떤 판에서는 중반 일부에서 판후이의 수가 알파고의 수보다 나았다고 요즘 AI 분석이 말해 줄 정도입니다.

아직 무자비한 정밀함의 시대는 아니었습니다. 알파고의 기풍은 사람의 신중함을 닮아 있었습니다. 최대의 이득보다 안전한 승리의 길을 택했고, 더 세게 몰아붙이는 대신 확실한 집으로 만족할 때도 있었습니다. 훗날에는 이 성향을 결함이 아니라 알파고를 규정하는 특징으로 보게 되지만, 당시에는 편안한 착각을 키웠습니다. 기계는 강하지만 여전히 사람 같고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는 착각이었습니다.

Overhead view of a Go board showing a position with a highlighted move marker

그런 눈으로 보면 5–0이라는 스코어는 예언이라기보다 예외처럼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중간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간의 습관을 얼마나 멀리 벗어날 수 있는지 아직 배우는 중인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바둑계는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진짜 시험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고 많은 사람이 믿었습니다.

대국 전의 이세돌: 전설의 자신감

알파고의 다음 상대가 이세돌이라고 DeepMind가 발표하자 분위기가 단숨에 달라졌습니다. 강한 프로를 상대로 한 조용한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현대 바둑을 대표하는 인물과의 공개 대결이었습니다.

Collage showing Lee Sedol holding trophies and posing at professional Go events

2016년 무렵 이세돌의 명성은 확고했습니다. 세계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고, 강한 기세와 창의적인 해법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인간적인 바둑의 이상을 그대로 보여 주는 기사였습니다. 안정감과 능률로 존경받는 기사가 있었다면, 이세돌은 판을 복잡하게 만들고 뜻밖의 수단을 찾아내며 혼전을 기회로 바꾸는 능력으로 두려움의 대상이 됐습니다. 사람을 상대로 이 기풍은 숱한 우승을 안겨 주었습니다.

이세돌은 당연히 알파고와 판후이의 대국을 살펴봤습니다. 살펴본 내용에 불안을 느낄 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기계는 강해 보였지만 압도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 바둑에는 눈에 띄는 부정확함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어떤 선택은 보수적이다 못해 소심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이세돌이 보기에 결론은 뻔했습니다. 알파고는 프로를 이겼지만 자신 같은 프로를 이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공개적으로 이세돌은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속으로 유일하게 확신하지 못한 것은 최종 스코어였습니다. 자신이 5–0으로 이길까, 4–1로 이길까? 알파고가 자신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진지한 화제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세돌도, 다른 누구도 보지 못한 것은 2015년 10월과 2016년 3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동안 알파고는 쉬지 않고 훈련했습니다. 수백만 판을 훌쩍 넘는 자가 대국이 판단을 다듬고 약점을 줄이며 반상을 보는 눈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바깥에서는 아무도 그 결과를 볼 수 없었습니다. 서울에 앉게 될 기계는 판후이와 둔 그 기계가 아니었습니다.

Developer working at a computer with code and Go board analysis related to AlphaGo development

정보의 비대칭은 중요했습니다. 이세돌이 알파고의 진짜 힘을 알게 되는 것은 첫 돌이 반상에 놓인 뒤였습니다. 그때까지 불확실함이 남긴 빈자리는 자신감이 채웠습니다. 바둑계 대부분이 함께 나눈 자신감이었습니다.

그렇게 무대가 차려졌습니다. 그 결말이 그런 식으로 흘러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서울 1국: 계획이 곧바로 무너진 순간

2016년 3월 대국이 시작될 무렵 기대는 이미 바둑계를 훌쩍 넘어서 있었습니다. 대국은 생중계됐고 해설은 여러 언어로 나갔으며, 서울의 강당과 광장은 함께 지켜보는 사람으로 가득 찼습니다. 더는 프로기사의 대국이기만 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직관과 기계의 계산을 겨루는 시험이자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 되어 있었습니다.

첫 대국은 제법 조용하게 출발했습니다. 이세돌은 편안한 리듬을 잡았고, 힘의 균형을 꿰뚫고 있다고 믿는 사람의 자신감으로 두었습니다. 초반 국면은 유리해 보였습니다. 흑은 실속 있는 집을 챙겼고 백은 가볍고 흩어져 보였으며, 해설자는 인간 쪽이 편한 바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알파고가 뜻밖의 수를 두었습니다.

복잡한 국면을 피하기는커녕 이른 싸움을 걸었습니다. 끊고 들여다보고 돌을 갈라놓아, 이세돌이 여러 곤마를 한꺼번에 건사하게 만들었습니다. 반상은 거의 즉시 팽팽해졌습니다. 조용한 집으로 가는 대신 기계는 판을 불안정한 쪽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인간의 창의성이 빛나야 마땅한 바로 그런 국면이었습니다.

해설석에서는 안심시키는 말이 이어졌습니다. 복잡해 보여도 감당할 만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세돌은 원래 혼전에서 강한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중반이 흘러가면서 미묘한 변화가 드러났습니다. 알파고는 복잡함을 버텨 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국지전이 하나씩 아주 조금씩 알파고에게 유리하게 정리됐고, 그것이 쌓여 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AI 분석은 그 자리에서 알아챈 사람이 거의 없던 사실을 뒤늦게 확인해 주었습니다. 아주 이른 단계부터 이 바둑은 백이 편했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의 균형은 착시였습니다. 처음에는 작았던 알파고의 우세는 첫 싸움을 지나며 꾸준히 커졌습니다.

끝내기에 접어들 무렵 승부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알파고는 볼거리보다 확실함을 앞세운 보수적인 선택으로, 차분하고 능률적으로 승리를 굳혔습니다. 이세돌은 계가에 이르기 전에 기권했지만, 심리적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이세돌은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는 국면을 만났습니다. 패배 자체도 놀라웠지만 지는 방식은 더 불편했습니다. 알파고는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실수 하나를 파고들어 이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포석 단계부터 바둑의 성격을 제 뜻대로 정해 버렸습니다.

대국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처음의 전제는 벌써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깨달음: 창의적으로 두고 있던 알파고

1국이 기대를 흔들었다면, 2국은 그 기대를 아예 무너뜨렸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포석은 무리 없이 흘렀고 형세는 팽팽했으며, 이세돌은 선택지를 열어 둔 채 세력을 쌓는 익숙한 구상을 따라갔습니다. 당장의 위험도, 눈에 띄는 악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알파고가 방 안을 얼어붙게 만든 한 수를 두었습니다.

단순히 뜻밖인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아예 틀려 보였습니다.

Go board showing an early opening position with a highlighted move marker

5선 어깨짚기는 바둑의 기본 감각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수였습니다. 어깨짚기는 본래 상대 돌을 낮게 눌러 세력을 깎는 데 쓰는 수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정반대로 보였습니다. 집을 제한하기는커녕 오히려 내주는 듯했습니다. 해설자는 머뭇거렸고 관중은 화면을 응시했습니다. 경험 많은 프로기사조차 자기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설명하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수는 통했습니다.

그 뜻은 천천히 드러났습니다. 이 돌은 당장의 실리를 노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멀리 떨어진 반상의 여러 곳을 이어 주고, 여러 곤마를 한꺼번에 뒷받침하며, 앞으로의 공격을 조용히 준비했습니다. 처음에는 양보처럼 보이던 수가 놀랍도록 조화로운 형태로 펼쳐졌습니다. 알파고는 사람의 관습을 따르지 않았을 뿐, 논리는 따르고 있었습니다. 굳어진 틀을 넘어서는 논리였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바뀐 순간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알파고가 사람의 기보에서 배운 아이디어를 다시 조합하는, 아주 빠르고 성실한 모방자일 뿐이라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 설명은 여기서 무너졌습니다. 이 수를 고를 프로는 없었습니다. 어떤 교재도 이 수를 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기계는 스스로 이 수를 찾아냈고, 세계가 지켜보는 무대에서 둘 만큼 그 수를 믿었습니다.

대국이 끝난 뒤 이세돌 본인도 이 수의 의미를 인정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를 무작정 뒤지는 시스템이 아니었습니다. 독창적인 발상을 할 줄 알았습니다. 사람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국면을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대국의 심리적 균형은 돌이킬 수 없이 기울었습니다. 알파고가 2국을 이겨 2–0으로 앞섰지만, 스코어는 이야기의 일부일 뿐이었습니다. 더 깊은 패배는 관념의 패배였습니다. 창의성이야말로 기계가 넘지 못할 마지막 벽이라는 오랜 믿음이 방금 뚫린 것입니다.

이 시점부터 대국의 초점은 알파고가 이길 수 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기계가 아직 보지 못한 무엇인가를 인간이 찾아낼 수 있느냐였습니다.

압박과 변신: 기풍을 바꾸면 역효과가 나는 이유

이세돌이 2–0으로 뒤지면서 대국은 위험한 심리 구간으로 들어섰습니다. 이 수준에서 기사는 반상의 형세만이 아니라 자기 본능과도 싸웁니다. 뭔가 다르게 해 봐야 한다는 유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3국에서 인간 쪽 전략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익숙한 틀에 자리 잡는 대신 포석부터 곧장 충돌로 몰고 갔습니다. 일찌감치 돌을 붙였고 말은 갈라졌으며, 반상은 양쪽 모두의 미해결 약점으로 가득 찼습니다.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혼전을 만들고 속도를 올려, 알파고의 차분하고 체계적인 통제에서 바둑을 끌어내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선택은 이해할 만합니다. 모든 것을 조용한 정밀함으로 재는 듯한 상대 앞에서는, 판단 자체가 어려운 국면을 만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대응입니다. 싸움바둑은 오랫동안 인간의 요새로 통했습니다. 직관과 배짱, 그리고 상대의 심리를 읽는 감각의 영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경험은 냉정한 교훈을 남깁니다.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자기 기풍을 근본부터 바꾸는 일은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국이 흘러가는 동안 알파고는 복잡한 상황을 섬뜩할 만큼 침착하게 다뤘습니다. 돌은 가벼웠습니다. 이음은 언제나 제때 나왔습니다. 위협은 받아 주되 결코 과민하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라면 공격을 몰아붙이거나 미리 지키고 싶어질 자리에서, 기계는 한결같이 탄력을 남기는 수를 골랐습니다.

싸움은 수십 수 동안 이어졌습니다. 죽은 말은 하나도 없었고 극적인 붕괴도 없었습니다. 대신 알파고는 혼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챙겨 나왔습니다. 크고 안정된 모양, 그리고 뚜렷한 집 우세였습니다. 전투는 치열했지만 결과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습니다.

Go board showing a complex late-game position from AlphaGo versus Lee Sedol

요즘 분석은 불편한 사실 하나를 뒤늦게 확인해 줍니다. 앞서 치른 판후이와의 대국 가운데 판후이가 가장 잘 둔 판은 사실 1국이었습니다. 압박과 조급함이 밀려오기 전이었습니다. 결과를 억지로 만들려 할수록 정확도는 떨어졌습니다. 여기서도 같은 흐름이 되풀이됐습니다.

3국이 끝났을 때 스코어는 3–0이었습니다. 승부는 사실상 결정됐습니다. 바둑계는 진지하게 준비해 본 적 없는 결말과 처음으로 마주했습니다. 인간의 전설이 완패를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상대가 압박에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은 것은 승리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의미를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4국: 인간의 대답

4국에 이르렀을 때 대국의 결과는 더 물을 것이 없었습니다. 3–0으로 뒤진 이세돌에게 승부를 되돌릴 길은 없었고, 남은 것은 이야기의 균형을 되찾는 일뿐이었습니다. 이어진 것은 전략의 재정비가 아니라 심리적 해방이었습니다. 잃을 것이 없어진 이세돌은 자유롭게 두었습니다.

Broadcast image of the Go board during Game 4 between AlphaGo and Lee Sedol

대국의 상당 부분 동안 알파고는 익숙한 방식으로 판을 마무리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계는 상변에 커다란 세력권을 쌓았고, 이세돌은 다른 곳에서 능률적으로 집을 챙기며 여러 돌을 미생인 채로 남겨 두었습니다. 나중에 그 돌을 살려 낼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중반이 흐르는 동안 알파고는 10집 안팎의 우세를 지켰습니다. 이 수준에서 이 정도 차이는 대개 차분한 승리로 미끄러져 간다는 신호입니다.

그때 그 자리의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이미 끝난 듯 보이던 국면에서 이세돌은 반상 곳곳에 잠자던 가능성을 터뜨리는 한 수를 찾아냈습니다. 상관없어 보이던 약점을 되살렸고, 멀리 떨어진 위협을 하나의 구상으로 엮었으며, 알파고를 낯선 자리로 밀어 넣었습니다. 이 수는 부분의 결과만 위협한 것이 아니라 기계의 형세판단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훗날 ‘78수’로 회자되는 바로 그 수입니다.

훨씬 강력한 AI 도구를 갖춘 오늘의 시선에서 보면 불편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이 수는 통해서는 안 되는 수였습니다. 이 수 뒤에도 흑은 여전히 넉넉하게 이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지식은 미래의 것입니다. 그날 그 버전의 알파고를 상대로, 이 수는 맹점을 정확히 찔렀습니다.

알파고는 올바른 응수를 찾지 못했습니다. 부정확한 선택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토록 확신에 차 있던 기계의 수가 머뭇거리고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세돌은 그 틈을 정확하게 파고들어 혼전을 명쾌하게 정리하고, 조금 전까지 죽은 목숨처럼 보이던 돌을 살려 냈습니다.

이 대국을 통틀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파고가 판을 놓쳤습니다.

이세돌은 그 판을 이겼고,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세계 타이틀을 여러 번 거머쥔 기사였지만, 한 판의 승리가 이토록 뜨겁게 축하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대국장은 박수로 가득 찼습니다. 안도와 감탄, 그리고 반항에 가까운 감정이 관중 사이로 번졌습니다.

스코어는 여전히 3–1이었습니다. 알파고는 여전히 압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되찾았습니다. 이 판은 인간을 넘어선 시스템도 놀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여서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못한 발상으로 말입니다.

이세돌 너머: 상한선이 사라진 순간

이세돌과의 대국이 끝나면서 DeepMind는 세상에 분명한 사실 하나를 보여 주었습니다. 인공지능이 이제 어떤 인간 기사보다 강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둑이 인간에게만 남은 마지막 영역이라는 오랜 전제는 마침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세돌과 마주 앉은 알파고는 불과 몇 달 전 판후이를 꺾은 알파고보다 이미 눈에 띄게 강했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러운 질문이 따라왔습니다. 이 시스템에 훈련할 시간을 더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답은 그해가 저물기 전에 나왔습니다.

2016년 12월, 바둑 서버 타이젬에 정체불명의 새 계정이 나타났습니다. 세계 최강 기사에게 차례로 도전해 모두 이겼습니다. 60판, 60승. 처음에는 아무 설명도 없이 조용한 불신만 감돌았습니다. 곧 이것이 같은 프로젝트의 또 다른 진화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훗날 알파고 마스터로 불리게 되는 존재였습니다.

Graphic comparing AlphaGo Fan, AlphaGo Lee, and AlphaGo Master match results against human opponents

이듬해 알파고 마스터는 중국 최강 기사 커제와 공식 대국을 벌였습니다. 결과는 일방적이었습니다. 커제는 끝내 발판을 마련하지 못했고 승부는 3–0으로 끝났습니다. 이 시점의 알파고는 인간을 넘어섰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DeepMind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알파고 제로와 인간이 만든 틀의 끝

2017년에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 등장했습니다. 알파고 제로입니다. 이전의 어떤 버전과도 달리 사람의 기보를 단 한 판도 쓰지 않고 학습했습니다. 프로 기보 데이터베이스도, 물려받은 포석도, 통용되던 상식도 없었습니다. 바둑을 처음부터 혼자 익혔습니다.

처음에 그 바둑은 뒤죽박죽이었습니다. 거의 무작위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쉼 없는 자가 대국을 거치며 나름의 바둑 이해를 쌓아 갔고, 시간이 지나자 이전의 모든 알파고를 넘어섰습니다. 직접 붙여 본 결과 알파고 제로는 알파고 마스터를 상대로 100판 중 89판을 이겼습니다.

Summary graphic showing AlphaGo match results against Fan Hui, Lee Sedol, professional players, and AlphaGo Master

그 함의는 서늘했습니다. 추정에 따르면 알파고 제로는 이세돌과 둔 버전보다 석 점쯤 강했습니다. DeepMind가 서울 대국을 1년만 미뤘다면 결과는 극적이지도, 아슬아슬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일방적인 승부로 끝났을 것입니다.

이 거대한 작업을 끝낸 뒤 DeepMind는 방법을 공개했습니다. 다른 개발자도 같은 과정을 재현할 수 있게 됐고, 오늘날 인간을 넘어선 바둑 AI는 여럿입니다. 그 수준에 이르면 서로의 차이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누구나 무료로 쓸 수 있는 카타고 같은 도구조차 이제 어떤 프로기사보다 훨씬 강한 바둑을 둡니다.

대국이 끝난 뒤 이세돌이 남긴 회고는 많은 바둑인의 가슴에 깊이 남았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람들은 바둑이 인간 창의성의 궁극적인 표현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알파고는 그 믿음에 도전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바둑이 얼마나 보수적이고 틀에 박혀 있었는지를 드러냈습니다. 스승에게서 제자에게로 이어진 습관이 그 모양을 만들었고, 탐구가 아니라 전통이 그것을 굳혀 왔던 것입니다.

Portrait of Lee Sedol standing in front of an AlphaGo backdrop with a quote about creativity and Go

역설적이게도 이제 AI가 완벽의 기준이 되면서, 기사는 다시 그만큼 경직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다만 ‘정답’으로 통하는 수의 목록이 달라졌을 뿐입니다.

알파고가 끝내 바꾼 것은 포석 이론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2017년에 충격적으로 보이던 발상은 10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표준이 됐습니다. 더 깊은 변화는 관점에 있습니다. 바둑은 자기 전통보다 커졌고, 창의성을 인간의 직관만으로 규정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이 변화의 규모는 글 한 편에 담기에는 너무 큽니다. 그 여파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고, 따로 찬찬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둑판은 그대로 있습니다. 바둑돌도 그대로입니다. 그리고 과제도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완벽이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닐 때에도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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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o read all of this and to see all of it laid out in front of me is so devastating.It is hard for me to believe that ai has surpassed humanity not only in terms of factual knowledge and calculation but now also in terms of creativity and ingenuity. The success of these ai are truly disheartening as a teen who always believed that Go would be dominated by humans. It makes me fear for my future and for that of the younger generations that will come after me. It scares me that we shall one day be overcome by something of our own creation. One by one the intellectual fields of Checkers, Chess and now that of Go have fallen from mankind to machines, as we push ourselves to find new tools, to create new things that succeed exponentially, far beyond of what we had expected them to. I am honestly quite anguished that I have only found this article now in 2026 years after this had transpired. However I suppose that I should not be surprised seeing as I was 4 when Alphago beat Lee Sedol in 2016. 😅 Though I suppose that this was to be expected seeing that we are only human. But this is not a bad thing to be human is to be a beautiful creation, a creation that creates, even for our own downfall. Through human hands Alphago was created and due to this we fell. But it also means we should have hope for ourselves and for our future as a race. To know that we created something of such a devestating intellect is astonishing and I can only wait, with bated breath for what we shall make next. Honestly, it is like we are making things to push ourselves forwards and I for one cannot wait to see what comes next even if it means ai are taking more of the board games. I mean what’s next battleship? 🏴‍☠️🛳️🚢Candy land?🍭🍪🍩🍭🍬🌄🏞️

    Ps: if u actually read this thank you and sorry for rambling so much I just… felt like doing so and yeah😅 I really am not sure. Please have a wonderful day🥰😺🐶also who knew emojis could be this adorable!!?!?!